김지승 작가가 읽고 쓰기 위한 여성의 질문들을 던집니다. 격주 화요일 연재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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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노는 너무 참한 말이다. 80대 여성노인이 햇무 한쪽과 함께 콕 집어 알려준 바로는 그렇다. 그만큼 살아도 자기만 학교에 보내지 않은 엄마 이야기를 할 때는 눈꼬리가 새초롬해진다. 나만 새 신발을 사주지 않았고, 나만 친척 집에 보냈고, 나만 때렸고, 내 결혼만 전혀 도와주지 않았고, 나만 사랑하지 않았어… 7, 80대 여성노인 다섯이 낯가림 위장술을 해제하고 쏟아내는 말 아래로 꼭 쥔 주먹들이 보였다. 그렇게 부르르, 분노에 떨었어요?
분노? 그거는 너무 참한 말이고.
미치고 펄쩍 뛸 지경인 거지.
그때는 똥물이라도 퍼다 남자들 밥상에 촥 뿌리고 싶더라만.
아이고, 똥물은 너무했다!
이 형님이 왜 잘 나가다 고상을 떨어?
똥 얘기는 80대도 웃길 수 있다. 쥐었던 손을 활짝 펴서 옆 노인의 어깨를 치며 와하하, 웃는 그들 맞은편에 “분노, 그거는 참한 말이고”에 충격을 받은 20대의 내가 있었다. 방언의 리듬까지 타니 “미치고 펄쩍 뛸 지경”에 비해 분노는 의심스럽게 묵묵했다. 앞의 것이 감정이라면, 뒤의 것은 그 위에 놓인 누름돌 같았다. 골똘하자니 노인이 햇무 한쪽을 내밀며 달다, 했다. 얼결에 입으로 받았다. 좀전까지 똥 얘기를 하지 않으셨던가요,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. 분노나 분뇨糞尿나. 그런 답을 들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자리였다.
며칠 후 녹취를 풀다가 10년 동안 모은 돈을 고스란히 도둑맞았다는 사연의 목소리가 실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. 동의 없이 몰래 가져갔으니 도둑질이 맞았다. 엄마가 작전을 짰고 아버지가 실행했으며 오빠는 당연한 듯 자기 결혼 비용으로 썼다. 마당을 뚫을 것처럼 발을 구르고, 동네 떠나가라 울고, 머리를 쥐어뜯고, 나중에는 드러누워 사지를 뒤틀며 아는 욕 모르는 욕을 곡소리에 섞어 하다가(한 노인이 끼어들었다. 미친년처럼? 응, 꼭 미친년처럼!) 결국 아버지와 오빠에게 두들겨 맞고 눈물, 콧물, 코피, 땀, 오줌이 뒤섞인(다시 끼어들었다. 더러운 미친년처럼? 그래, 더러운 미친년처럼!) 몸으로 집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. 다른 가족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. 나중에 여동생이 그랬다. 아빠가 잘못한 건 알겠는데 언니가 계속 소리를 지르니까,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감정적이었잖아. “도둑맞은 더러운 미친년”이었던 노인이 50년이 지나 대꾸했다. 오죽하면 그랬을라고? 녹취 파일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. 오죽하면. 반대편에는 늘 “아무리 그래도”가 있었다.
여성에게 글을 쓰는 일은 오죽하면과 아무리 그래도 사이 어딘가에서 주춤거리는 언어와 합류하는 일이다. 글로 쓸 수 없는 무언가 앞에서 잠시 멈춤,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터뜨리기, 거의 삶 같은 죽음에 전율하기다. 언어로 재현할 수 없는 무엇은 대개 오랜 분노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. 곧잘 슬픔이나 무기력으로 위장하는 그것. 무식하고 교양 없고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너무 시끄럽고 과장할까봐 쓸 수 없는 그것. 분노, 라고 쓰는 순간 미치고 “펄쩍”이, 똥물을 “촥”이 사라져버린다. 나비 표본 한 가운데의 시침핀 같은 언어로는 안 되는 것이다. 때때로 어눌하고, 심지어 횡설수설하며, 기억을 더듬더듬 좇다가 자주 뭉개지는 언어.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‘거의 없는 언어(a little language)’라면 가능할까? 그러나 여성 안의 분노보다 여성을 향한 분노와 더 친밀한 우리가 “아무리 그래도” 앞에서 숨과 말을 고르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. 낸시 밀러의 말처럼 미치고 펄쩍 뛰기의 언어를 구하는 것이 “다시 한 번 원죄를 저지르고, 다시 한 번 남성의 영역을 침범”하는 일임을 안다고 해도 아니, 알고 있기 때문에.
지금은 새벽 2시, 어둠과 적막이 서로를 끌어안고 누웠다가 화들짝 깨어난다. 창 밖 한 여자의 발과 말이 어둠을 고통스럽게 찌른다. 적어도 나는 내 감정을 알아. 소리 지를 만 하니까 지르는 거라고! 이후로는 뜻 모를 음절들이 반복된다. 펄쩍, 촥, 펄쩍, 촥… 일순, 억눌렸던 목소리가 반동적으로 솟구친다. 내 돈 내놔! “도둑맞은 더러운 미친년”은 도처에 있다. 내 방에도 있다. 나도 내 감정은 안다. 그건 말로 다 못해. 노인이 말로 다 못한다고 굳이 말한 것처럼 어떤 것은 쓸 수 없다고 기어이 쓰면서 오죽하면 쪽에 선다. 평균과 균형과 형벌의 세계에서 길을 잃은, 거듭 미치고 펄쩍 뛰는 한 여자 곁에서 촥.
덧. 오래전 이루어진 여성노인들과의 인터뷰 주제는 ‘복수’였다. 원고는 ‘황혼은 너그럽게!’라는 제목으로 빨갛게 수정되어 돌아왔다. 맞다. 때로 분노는 너무 참한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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